[프로야구 레젼드] '어린왕자' 김원형

Posted by 웃어요항상
2018.05.04 07:30 스포츠

어제 포스트한 주형광선수가 깨기전 최연소 승리투수는 '어린왕자' 김원형이다.

나는 쌍방울 레이더스(이하 쌍방울)의 자존심으로 불릴선수로는 '창단 최초 신인왕 조규제?'도 '팀 유일 홈런왕 김기태?'도 아닌 김원형이라 생각한다. 쌍방울이 창단되었던 1991년 대학 국가대표 출신 '조규제와 김기태'와 전주고 출신 '김원형과 박경완'도 입단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김원형이냐?'는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그가 나온 전주고는 1925년 야구부가 창단하여 해방이후 1985년 황금사자기 우승이 유일한 전국대회 우승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약체팀이었다. 당시 팀에서 에이스였던 김원형은 고3때 대통령배 8강이 유일했지만 전북을 연고로 창단한 쌍방울의 고졸우선지명에서 김원형이 지명받는다.(같은학교 박경완은 프로지명 받지못했는데 김원형의 추천으로 쌍방울에 신고선수로 입단한다. 당시 고졸 최대어는 고교때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공주고 노장진이다.)

1990년 2군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1991년 리그 8번째 구단으로 참가한 쌍방울은 팀 데뷔경기에서 강팀으로 발돋음중인 빙그레를 11-0으로 산뜻하게 이기고 돌풍을 예고한다. 당시 감독은 현재 '국민감독'으로 불리는 김인식 감독이었는데 프랜차이즈 스타로 키우기위해 고졸신인 김원형을 첫해부터 선발투수로 기용한다. 그런데 실상은 창단팀 특성상 얇디얇은 선수층이었다. 하지만 이내 사고를 치고만다. 4월27일 OB 베어스전에서 당시 최연소 완투승을 거둔다. 심지어 90년 우승팀 해태 타이거즈전에서 선동렬과 맞대결에서 완봉승을 거두며 최연소 완봉승을 기록한다.

신생팀 최고 승률이기 하지만 승율 4할2푼5리의 7위팀에서 승수를 쌓기란 쉬운일이 아니었다.

(7승 11패, 방어율 4.69, 75탈삼진, 136 1/3이닝)

이듬해 팀성적은 더욱 하락하여 꼴찌를 기록하지만 3점대 방어율과 100탈삼진 이상을 기록하며 더욱 성장한 모습을 보인다.(8승 7패 1세이브, 방어율 3.32, 104탈삼진, 138 1/3이닝)

 

 

93년은 김원형의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팀은 여전히 3할대 승률로 7위로 하위권이었지만 4월30일 OB 베어스전에서 최연소 노히트노런을 따내는등 두자리 승수를 기록하며 더욱 일취월장한 성적을 나타낸다. (11승 9패, 방어율 2.93, 87탈삼진, 135 1/3이닝)

94년은 132이닝을 소화하지만 5승만을 기록하며 또다시 꼴찌를 기록한 팀과함께 부진을 같이한다.

심기일전하여 다시 3점대 방어율을 기록하지만, 팀은 2년연속 꼴찌를 기록한다,

96년은 김기태, 박경완등 타격의 폭발로 팀창단 최초로 3위를 기록하지만 정작 김원형은 방어율 4점대 5승으로 부진한다.

97년 비록 팀은 다시 꼴찌를 하게 되고 김원형도 두자리 승수는 실패하지만 150이닝 이상, 2점대 방어율로 부활한다.(9승 9패, 방어율 2.75, 80탈삼진, 157이닝)

98년 팀과함께 프로데뷔 최고시즌을 보낸다.

IMF 여파로 창단멤버인 조규제, 박경완을 현금트레이드하며 현대 유니콘스로 이적하게되고 김기태, 김원형은 투타 유일한 트레이드 불가선수가 된다. 김성근식 '벌떼야구'로 정규리그 3위를 기록하고 플레이오프에서도 2승을 먼저 거두어 창단최초 한국시리즈 진출을 눈앞에 뒀으나 3게임을 내리 내주며 시즌을 마감하다.

하지만 김원형은 그해에 열린 방콕아시안게임에 참가하며 금메달을 차지하며 병역문제를 해결하게 된다.(12승 7패 13세이브, 방어율 2.52, 109탈삼진, 150이닝)

1999년에는 김기태가 김현욱과함께 삼성으로 트레이드 되면서 김원형만 남게 된다.

99년 주전 대부분을 팔아치운 쌍방울은 김성근감독의 벌떼야구를 계속 선보였지만, 장종훈에게 타구를 맞는 큰 부상으로 11게임만 등판하며 2승 만을 기록한다. 

그리고 드디어 쌍방울을 떠난다.

 

 

트레이드도 FA도 아닌 선수를 팔아치우고도 재정악화로 팀을 해체하게 되면서 김원형은 2000년 쌍방울 선수단을 승계한다는 조건으로 인천을 연고로 창단하며 또다시 창단멤버가 된다.

팀도 연고지도 옮겼지만 팀은 역시나 약팀이었고 김원형은 최악의 부진에 빠진다. 팀은 3할대 승률로 꼴찌를 기록하고 김원형은 2승 13패로 10패이상 기록한 투수중 장명부 다음인 1할대 승률을 기록한다.(장명부는 1승 18패를 기록한다. 그 1승은 롯데 자이언츠다)

2001년 다시한번 150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9승을 기록하지만 이듬해 부진하기를 반복한다.

2005년 다시한번 부활한다. 팀 역시 2004년 정규리그 4위를 기록하며 한국시리즈 준우승까지 차지하였고, 김원형이 14승으로 7년만에 두자리승수를 기록하고 데뷔 최다 171이닝을 소화하며 팀창단 최고 승률을 기록하며 3위를 차지한다.

 

 

그리고 2007년 다시한번 김성근감독과 재회한다. SK는 더이상 약팀이 아니었다.

SK느는 5년동안 4회 우승(1회 준우승)을 차지하고 SK왕조를 완성하였고,  선발과 중간계투를 오가며 2008년 12승을 기록한 김원형은 계속되는 부진과 부상으로 2010년 은퇴를 결심하게 된다.

20년간 프로야구에서 활약하였지만 개인상은 하나도 수상하지못한 선수다.

하지만 그는 최다승(5위), 최다선발출전(3위)를 기록하며 꾸준했던 선수이기도 했다.

이제 그는 타향인 부산에서 그의 주무기 '폭포수커브'를 신인선수에게 전수하고 있다.

이제 더이상 어린왕자는 아니지만 또다른 어린왕자를 키워내고 있다.

 


통산성적: 545경기 134승 144패 26세이브 12홀드, 방어율 3.92, 1,246탈삼진, 2,171이닝

이 댓글을 비밀 댓글로
  1. 팀만 잘 만났더라면 더 좋은 실력을 뽐 낼을 텐데 아까운 선수입니다.
    • 그러게요 뭔가 2%부족해 보이는 선수이긴한데 팀빨은 더 부족했죠 막판에 우승했으니 ㅋ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