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레젼드] 늘푸른 소나무 '노송' 김용수

Posted by 웃어요항상
2018.05.01 07:25 스포츠

불같은 강속구도 타자들을 속이는 극강의 변화구도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컨디션이 나빠도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고, 언제나 본인의 임무를 완수했다. 최고의 소방수로, 꾸준한 선발투수로 그 어떤 한가지만 완벽하게 소화해도 레젼드로 최고의 투수라 불릴수 있지만 그는 두가지를 모두 소화했다. 아니 완벽했다. 그는 '늙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암흑기때도, 전성기때도 LG 트윈스의 마운드를 지켰다. '노송' No.41 김용수

 

 

프로야구 최초로 1차지명을 두번받은 선수이다.(1983년 1차 1지명, 1985년 1차 9지명, 87년까지 연고지명으로 1차지명을 10명~3명까지 있었기에 지금과는 방식이 조금 다르지만 84년 LA올림픽 참가를 위해 실업팀 한일은행에서 2년간 활약한다.)

그는 야구명문 동대문상고(청원정보산업고에서 폐교후 청원고로 편입)를 졸업하고 중앙대로 진학한다. 당시로써는 최고145Km를 던지는 강속구 투수이며, 예리한 슬라이더를 가지고 있었다.

83년 MBC 청룡 1차 1순위로 지명을 받지만, LA올림픽 참석차 프로지명을 뒤로하고 실업팀 한일은행에 입단, LA올림픽에 참가한다.(선동렬선수도 올림픽 출전때문에 실업팀 한국화장품에서 입단후 85년 해태로입다한다. 3,4위전에서 역전패로 4위로 마감한다.)

 

 

85년 MBC 청룡과 계약금 2,300만원 연봉 1,200만원에 계약한 김용수는 많은 기대를 받고 대뷔하지만, 시즌초 강습타구를 무릅에맞고 시즌을 접게된다.

86년 시즌2년차부터 폭발한다. 86년 신인왕을 수상했던 김건우의 폭발(18승 6패, 방어율 1.81)과 김용수의 마무리로 후기리그 막판까지 선두다툼을 하며(1위와 1게임차 3위) 활약을 펼친다.(9승 9패 26세이브(1위), 방어율 1.67, 178이닝, 74탈삼진, 60경기) 특히나 마무리 투수로 3~4이닝 심지어 5이닝을 소화하기도 하였고, 왠만한 선발보다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87년 팀은 또다시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지만, 2년연속 10승을 거둔 김건우와 구원왕에 오른 김용수를 응원하며 유일한 위안거리로 삼았었다.(9승 5패 24세이브(1위). 방어율 1.98(2위), 141이닝, 71탈삼진, 52경기)

88년 2년연속 구원왕이지만, 2년연속 최다출전했던 그는 결국 탈이났다. 비록 11세이브로 구원3위를 찾지했지만, 4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부진한 시즌을 보낸다.(3승 5패 11세이브(3위), 방어율 4.47, 탈삼진 51개, 98 2/3이닝)

89년 다시한번 구원왕에 오르지만 86,87년에 비해서 강력한 모습은 사라졌다.(5승 5패 22세이브, 방어율 3.19, 51탈삼진, 104 1/3이닝) 그리고 본인의 꿈인 선발로 전환한다.

90년 MBC 청룡을 인수한 LG트윈스는 시즌초 꼴찌로 시작하였지만, 18승을 거둔 김태원과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활약한 김용수, 신인왕을 수상한 포수 김동수의 활약으로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 한국시리즈 2승 방어율 1.29를 기록하며 시리즈MVP를 차지한다.(12승 5패 5세이브, 방어율 2.04(3위), 119탈삼진, 149 2/3이닝) 

 

 

91년 김용수는 또다시 선발과 마무리로 활약하며 190이닝을 소화하며 활약하지만, 팀은 정규리그 6위를 차지하며 전년도 우승팀의 위용은 온데간데없이 무너진다.(12승 11패 10세이브, 방어율 2.79, 129탈삼진, 190이닝)

92년 그동안의 혹사가 결국 화근이 되었는지 그는 최악의 부진에 빠진다. 입단때부터 팀이 부르면 언제나 마운드를 지키던 그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하지만 '신바람 야구'로 프로야구 최초라고 할수있는 5선발체제와 투수업무 분담으로 팀을 추스르던 이광환 감독은 마무리 정삼흠을 선발로 올리고, 김용수를 마무리로 전환시켰지만 무리한 등판을 자제하고 철저하게 관리체제로 운영하며 마무리에 안착한다. 50경기에 등판하지만 75이닝정도만 소화하며 철저하게 마무로만 기용했던 덕분에 신인 조규제에 이어 구원2위를 기록하며 다시한번 부활한다.(6승 2패 26세이브, 방어율 1.55, 60탈삼진, 75 2/3이닝)

94년 LG 트윈스는 최고의 시즌을 보낸다. 15승투수만 무려 3명(이상훈, 정삼흠, 김태원) 해결사 한태화, 검객 노찬엽, 신인최초 20-20을 기록한 김재현, 서용빈, 유지현의 신인 3인방에 마무리 김용수까지 거의 안벽에 가까운 시즌을 보내며, 2위와 11.5게임차로 우승을 차지한다. 태평양 돌핀스와의 한국시리즈를 4-0으로 스윕하며 1승 2세이브를 기록한 김용수는 다시한번 시리즈 MVP를 차지한다.(5승 5패 30세이브(3위), 방어율 2.56, 44탈삼진, 63 1/3이닝)

95년 비록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LG 트윈스의 '신바람 야구'는 계속되었고 그 경기의 마무리는 언제나처럼 김용수가 경기를 정리하였다.(4승 2패 30세이브(2위), 방어율 1.43, 44탈삼진, 69이닝)

 

 

96년 LG 트윈스는 마운드가 완전히 무너졌다. 전년도 최강 선발이었던 20승투수 이상훈이 혈행장애 부상으로 쓰러지자 결국 시즌도중 다시 선발로 전환하며 입단후 최초로 15승이상을 거두며 홀로 분전하였다.(16승(3위) 7패 9세이브, 방어율 2.82, 92탈삼진, 130 2/3이닝)

97년 입단후 처음으로 풀타임선발(구원경기X)로 소화했던 김용수는 12승을 거두며 2년연속 두자리수 승수와 다시한번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만 이종범의 해태 타이거즈에게 우승을 넘겨준다.(해태 타이거즈로는 마지막 우승)(12승 8패, 방어율 3.70, 121탈삼진, 177 2/3이닝)

98년 시즌막판 마무리로 잠깐 등판하였지만 주로 선발로 활약하며, 입단후 최초로 다승왕을 차지하며 나이를 잊은 노익장을 과시하며 팀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만 이번에는 현대 유니콘스의 첫우승의 제물이 된다.(18승 6패 2세이브, 방어율 3.45, 116탈삼진, 175이닝)

 

 

99년 3년간 무리했던 김용수는 또다시 마무리를 맡은 그는 4월15일 투수최초 200세이브를 기록한다. 시즌을 구원3위로 마무리했던 그는 이듬해 2000년 마무리로 등판했지만 부진한 시즌을 보낸다. 그러자 많은 이들의 만류에도 더 이상의 미련을 버리며 16년간 100승-200세이브라는 금자탑을 세우며 선수생활을 마무리한다. 불혹이 지난 나이에도, 수많은 혹사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자기관리로 꾸준함을 보여준 그는 투수최초 600경기 등판이라는 대단한 기록을 세운다.

그는 LG 트윈스 최초로 '41번'이 영구결번 된다.

통산: 613경기 126승 89패 227세이브, 방어율 2.98, 1,146 탈삼진, 1,831 1/3이닝

 

은퇴후 LG 트윈스에서 투수코치, 스카우트로 지내고 2010년 모교인 중앙대학교로 돌아가 감독으로 재직중 심판들에게 식사비로 100만원을 건낸것이 발각되어, 3년간 자격정지를 받는다. 물론 잘못한 일이지만 그가 남겼던 업적만큼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자격정지가 끝난 시점에서 다시한번 지도자로 복귀한 그의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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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선발 투수로 마무리 투수로 모두 성공했던 보기 드문 투수였는데... 지도자로는 그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 네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앞으로 다시 기회를 얻기를 바랄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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