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레젼드] 불사조 박철순

Posted by 웃어요항상
2018.04.29 00:47 스포츠

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흥행을 위해서 성적을 위해서 걸출한 스타가 필요했다.

당시 MLB 밀워키 브루워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2년간 활약중이었던 박철순은 트리플A로 진출을 약속받은 상태에서 OB베어스의 입단제의에 응하면서 원년 멤버로써 프로야구 출범과 동시에 비교불가의 선수가 된다.

제대로 2군 시스템조차 없어서 주전멤버 14명으로 창단했던 팀들이 즐비했던 한국야구에서 박철순의 강속구와 팜볼(너클볼이라는 말도 있음)등으로 OB베어스를 원년 우승팀으로 이끈다.

 

 

박철순은 최동원, 선동렬, 김시진같은 엘리트코스를 밟은 선수는 아니다.

부산에서 태어나서 경남중-부산고를 다니던중 대전 대성고, 다시 서울 배명고로 전학을하며 연세대로 진학하지만 그곳에서도 제대로 투수로 활동하지 못한다.

그러자 인생 최고의 선택을 한다. 공군으로 입대하여 야구팀 '성무'에서 활약하게 된다.(육군은 '경리단'이며, 후일 군통합 체육부대 '상무'가 된다. 우연인지 상무의 엠블렘이 '불사조'다.)

'성무'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며 대학,실업팀이 참가하는 백호기에서 연세대와의 결승에서 연세대 에이스 최동원을 상대로 2:0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한다. 그리고 국가대표에 발탁된다.

78년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세계선수권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아마야구 최강 쿠바를 상대로 선발로 나와서 승리를 거두면서 진가가 발휘된다. 후일 MLB의 주목을 받게된다.

79년 전역후 연세대로 복학한 박철순은 한미 대학야구선수권에 참가했는데 마이너리그와의 연습경기에서 빠른볼을 선보이며 스카우트 표적이된다. 최동원과 달리 그는 병역을 마쳤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실 박찬호선수가 MLB에 진출하였을때도 그랬지만 그당시 박철순은 더욱 심하게 '실패할것이다.' 3개월 만에 안 돌아오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등 혹평속에서도 2년간 착실히 빅리그진출을 꿈꾸고 있었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변화구라고는 커브, 슬라이더, 슈트(역회전볼로 슬라이더와 반대로 몸쪽으로 휘어져 들어오는 볼. 팔의 비틀림이 심해서 부상등의 이유로 90년대 이후 던지는 선수가 거의 없어진다.)정도 였는데 무회전 볼인 팜볼등을 익히며 점차 정착중에 0B 베어스 요청으로 계약금 2000만원, 연봉 2400만원으로 한국으로 복귀한다.(당시 최고금액)

82년 OB베어스는 최강의 팀이었다. 이만수, 이선희를 필두로한 삼성 라이언즈 정도만 상대가 될정도로 OB 베어스한테는 아니 박철순한테는 차원이다른 경기로 우승을 차지한다.(전반기는 OB 베어스, 후반기는 삼성 라이온즈가 차지하며 한국시리즈에서 OB 베어스 차지한다.)

박철순은 22연승을 포함하며 탈삼진(2위)만을 롯데의 노상수에게 밀리며 다승, 방어율, 승률왕을 차지하며 MVP를 차지하며 최고의 투수로 승승장구 한다.(24승 4패 7세이브(다승1위), 방어율 1.84(1위), 탈삼진 108개(2위), 승률 0.857(1위))

 

 

83년 MLB진출에 실패한 최동원, 김시진등이 프로야구에 입단하며 최고의 투수를 가릴 기회가 있었으나, 전지훈련도중 82년 마지막 경기에서 허리를 다쳤고, 한국시리즈 '진통제투혼'으로 우승후 83년 미국으로 건너가 2차례의 허리수술 끝에 85년 귀국하지만 장애인 등록증을 받을정도로 더이상 박철순을 마운드에서 보기란 어려울듯 했다.

걷기조차 어렵다고 판정받았던 그이지만 불굴의 투지라는 말 외에는 설명이 되지않는 상황이 발생하였는데 85년 시즌막판 마운드로 걸어들어오는 박철순이 있었다. 과거의 강속구는 없었지만 팔색조라 불리며 다양한 변화구로 복귀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를 학수고대하였다. 88년 아킬레스건 부상등 크고 작은 부상으로 쓰러졌지만 또다시 일어났다.박철순의 부상은 OB베어스의 암흑기와 함께했다.

94년 OB 베어스 최악의 사태가 발발한다. 윤동균 감독이 체벌하려하자 박철순, 장호연등 최고참이 반발하며 OB 베어스 선수들은 감독퇴진을 요청하며 숙소를 이탈하며 항명파동을 하였지만, 구단은 박철순을 비롯하여 트레이드 하려하자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박철순은 구단사장과 면담에서 '자신도 은퇴할테니 윤동균감독 사퇴를 요구한다.'고 말하며 관철시켰고 후임으로 김인식감독으로 바뀌면서 OB 베어스 암흑기를 걷어낸다.

사실 연세대시절 후배 최동원 폭행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되었던 박철순선수가 저런일이 있었다니 아이러니이기는 하지만 어쨋든 뒤늦은 시기라도 폭행은 용납할수없다는 것은 잘한 행동으로 보인다.

96년을 마치고 은퇴한 박철순 선수는 1996년 7월 최고령 세이브기록(40세,4개월,18일), 1996년 9월에는 최고령 승리투수 기록(40세,5개월,23일)등 기록을 남기며, 15년간의 선수생활을 마감하며 부상과 싸우며 포기하지않는 진정한 불사조같은 모습을 보였다.( 76승 50패 20세이브, 방어율 2.95, 1,050이닝, 탈삼진 648개)

 

은퇴후 OB베어스 2군투수 코치로 재직하고 또다시 선수간 폭행사건에서 가해자 편에서서 '선배로써 그럴수도 있지않냐'라면서 사퇴하면서 프로야구와의 인연을 마감한다.

현재는 경기도 의왕시에서 스포츠 용품 회사인 알룩 스포츠의 회장겸 의왕시 사회인야구협회 고문을 맡고있는 그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의 등장곡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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