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도전사] 1954년~1986년 월드컵

Posted by 웃어요항상
2018.04.28 04:06 스포츠

올해는 너무나 많은 일이 벌어진다.

몇시간전 남북정상회담으로 역대 최초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김일성은 주석, 김정일은 국방위원장)이 비록 판문점이지만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북한의 정부수반은 표면적으로 김영남 위원장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상이고 실제 김정은 위원장이다.)

그리고 8월 인도네시아 아시안게임이 벌어지고, 그전 6월 14일 러시아에서 월드컵이 개최된다.

아직 16년전 2002년 월드컵의 여운이 아직 남은듯하나 이제 월드컵은 대한민국에서 환희와 아쉬움을 남기지만 그동안의 역사속에 우리나라 월드컵 도전사를 돌아보고자 한다.

 

 

1. 1954년 스위스 월드컵(최초 본선진출)

대한민국 월드컵 도전사 시작은 54년부터 이다.

1945년 일제강점기를 이겨내고 해방하였고 42,46년 월드컵은 2차대전과 그여파로 개최되지 못하고 1950년 브라질에서 열린 월드컵은 참가를 하지못한다.

그리고 1954년 한국전쟁으로 한반도가 폐허가 되었지만, 월드컵에 참가신청한 대한민국은 일본과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일본과 홈앤 어웨이 방식으로 치르게된다. 하지만 해방된지 10년이도 되지않아 일본인을 한국땅에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뜻으로 일본에서 2경기를 전부 치르게된다.(친일 청산이나 똑바로 하던지...) '지면 현해탄에 다 빠져죽으라'는 특명(?)을 받고 우리대표팀은 1차전에서 에이스 최정민선수의 역전결승골등으로 5:1로 승리한다. 2차전은 눈과 비가 동시에 내리는 악천후속에 2:2로 비기며 월드컵 본선행티켓을 거머쥔다.

 

 

이때까지 제대로된 공항조차 없었던 대한민국은 부산에서 배를타고 일본으로 일본에서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그리고 다시 스위스로 입국을 하게된다. 부산에서 6월 9일 출발하여 첫경기를 하루 앞둔 6월 16일 들어가게된다.

우리나라는 당시 52년 헬싱키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왼발의 달인' 페렌스 푸스카스(후에 스페인으로 망명, 레알 마드리드와 스페인 국가대표팀이 된다.)를 앞세운 헝가리와의 첫경기를 시차적응은 고사하고 제대로 잠도자지 못한 상태에서 치르게된다. 악전고투 속에 9:0으로 지고 경기 휘슬이 울리자마자 모두 쓰러지고 만다.(당시 우승국 서독또한 예선전에서 헝가리에 3:8로 진다.) 터키와의 2차전에서도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7:0으로 졌다. 3차전은 예선통과 했던 서독과 예선탈락이 확정된 한국전은 치러지지 않는다.(체류비가 부족해서 한국의 요청으로 치러지지 않았다는 설과 당시의 예선방식이라는 설이 난무한데 몇몇 팀은 탈락이 확정되고도 예선을 치른것을 보면 전자가 맞을듯 하다.)

당시 주전 골키퍼 고 함덕용 옹께서는 온몸에 피멍이 들정도의 악전고투에 '몸이 아픈것보다 동포 뵐 면목이 없을정도로 마음이 더 아프다'는 말을 남긴채 첫 도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 58년 스웨덴 월드컵

58년 스웨덴 월드컵은 에두손 아란테시 도 나시멘토(Edson Arantes do Nascimento) 가 전 세계를 통해 알려진 대회다.

후일 '펠레'로 불리우며 축구황제로 등극한 그는 17세의 나이에 믿기지않는 드리블과 골결정력으로 대회 MPV는 동료 디디에게 돌아갔지만 실버볼을 수상하며 앞으로의 그의 앞날을 기대했다.

대한민국 월드컵 도전사에 브라질 펠레얘기를 하는 이유는 대한민국은 당시 축구협회의 어처구니없는 대회 참가신청일자를 지키지 못해 예선부터 참가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예나 지금이나 공무원들이 그렇지 뭐)

 

3. 62년 칠레 월드컵

다시한번 월드컵에 도전하는 대한민국은 16개국이 참가하는 월드컵에 아시아쿼터가 0.5장(아시아 최종예선 통과자와 유럽팀 승자와 대결)인 상태에서 일본과의 최종예선에서 2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하지만 유고슬라비아와의 홈 앤드 어웨이 경기에서 1:5(어웨이) 과 1:3(홈)로 2패로 탈락한다.

 

 

4. 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영국 월드컵이 아닌 잉글랜드 월드컵이라 지칭하는건 영국은 4개의 축구협회가 있어 각각의 연방으로 월드컵을 치룬다.(잉글랜드, 스코들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로 나눠서 출전한다는 방침을 통과받고 38년 월드컵부터 참가한다.)

66년 월드컵은 당시 아시안게임 우승등 박두익을 필두로한 '아시아 최강' 북한과의 대결을 피하려 불참한다.

북한은 '아주리군단' 이탈리아를 예선에서 박두익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기고 8강에 진출하는 기적을 일군다. 포르투칼과의 8강전에서도 전반전 한때 3:0으로 앞서 갔지만 과거 한자어인 '유세비오'라는 지칭되었던 '유럽의 진주(펠레)' 에우제비오의 4골로 활약으로 4강진출이 좌절된다.

 

 

5. 70년 멕시코 월드컵

절치부심 다시 월드컵에 도전했던 대한민국은 지역예선에서 일본과 1승 1무, 호주와 1무 1패로 본선행이 좌절된다.

대한민국은 탈락했지만 브라질은 3회우승으로 당시 우승트로피인 줄리메컵을 영구보관한다.(하지만 1983년 줄리메컵을 분실하여 모조품을 전시하고 있다. 현재 월드컵 트로피는 영구보관 하지않고, 4년간 보관후 반납한다.)

 

 

6. 74년 서독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태국, 말레이시아, 이스라엘과의 예선에서 1승 2무을 거둔 한국은 다시한번 홍콩, 이스라엘을 꺽고 호주와의 지역 최종예선에서 맞붙는다.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치뤄진 경기에서 어웨이 경기에서 0:0으로 비긴 대한민국은 홈경기에서 2:0으로 앞서다 2:2로 비기며 제3국에서 치뤄야했는데 홍콩에서 벌어진 최종전에서 0:1로 패하며 또다시 월드컵 도전이 좌절된다.

 

7. 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유신독재가 한참이었던 대한민국은 다시한번 월드컵에 도전을 계속한다.

지역예선에서 일본과 1승 1무, 이스라엘과 1승 1무로 아시아,대양주 최종예선에 진출한다.

최종예선은 호주, 쿠웨이트, 이란, 홍콩과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치뤄진다. 하지만 7경기만에 2승 4무 1패로 탈락이 확정되며 다시한번 본선진출이 좌절된다.

 

 

8. 82년 스페인 월드컵

돈의 힘으로 무너진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다시한번 도전하는 한국에게 이번에는 축구 실력보다 오일달러에 진 경기였다.

그동안 본선진출국이 16개국에서 아시아,대양주 쿼터 한장에서 진출국이 24개국으로 늘어나고 아시아쿼터 2장으로 늘어나서 보다 쉽게 월드컵 진출을 낙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외부환경으로 월드컵진출이 물거품이 된다.

지역예선에서 태국, 말레이시아를 이겼던 한국은 쿠웨이트와 경기에서 일방적인 편파판정 속에 2:0으로 졌다.

최종예선에도 오르지못한 대한민국은 4년후를 기약하기 보다 돈의 힘으로 무너진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9. 86년 멕시코 월드컵

사실 86월드컵은 멕시코가 아닌 콜롬비아에서 개최가 결정되었으나, 1985년 11월 네바도 델 루이스 화산 폭발로 엄청난 피해와 치안문제와 경제문제가 겹쳐 개최권을 반납, 멕시코로 개최지가 급하게 변경된 대회였으나 가장 잘 치뤄진 월드컵중 하나가 되었다.(물론 대한민국이 참가해서 더 그런듯 하다.)

32년 숙원이었던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 지역예선 2차 인도네시아 와 최종예선 일본전은 어렵지않게 이겼지만, 실제  1차예선에서 말레이시아에게 패하면서 탈락위기까지 몰렸다. 원정경기에서 졌던 대한민국은 홈경기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2:0으로 승리하며 2차예선으로 진출한다.

2차예선 홈경기에서 2:0으로 이긴후 자카르타에서 열리 어웨이경기 역시 4:1로 이기며 최종예선에 오른다.

최종예선은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되는 일본과의 경기이다.

첫경기 도쿄에서 벌어진 어웨이 경기에서 정용환, 이태호의 연속골로 2골을 먼저넣고 일본에게 1골을 내주지만 2:1로 승리하며, 2차전 서울에서 벌어진 경기에서 허정무의 결승골로 본선의 꿈을 이룬다.

 

조추첨이 발표되었다. 역대 최악의 '죽음의 조' 편성되었다. (상대팀은 환호를 했겠지만 ㅜㅜ;;)

전성기의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 전대회 우승국 이탈리아, 동구권의 강호 불가리아(물론 24개국 참가로 조3위까지 16강 진출이 가능했지만 대한민국에는 차범근, 허정무외에는 해외경험조차 없었던 상황이었다.)

1차전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는 말그대로 마라도나로 시작해서 마라도나로 끝난 경기였다. 대한민국의 허정무선수가 전담마크 했으나 2010년 메시에게 당하듯 3~4명을 달고 다니다 수비가 비어있는 곳에 패스를하며 3골을 내주며 전반전을 마친다. 전담마크한 허정무선수가 때아닌 월드스타가 된다. 이름하여 '태권축구'

 

 

허정무선수는 악마의 편집이라고 했으나 경기내내 마라도나 선수는 축구공보다 축구화를 피하기가 더 힘들었다고 한다.(두 선수는 2010년 월드컵에서 다시한번 감독으로 만난다. 이번에는 메시한테 농락당하며 4:1로 진다. 경기내용은 비슷하다.)

하지만 후반은 경기양상이 달라진다. 전열을 가담듬은 대한민국은 주장 박창선선수의 중거리 슛으로 월드컵 첫골을 넣지만 경기는 3:1로 패한다.

 

사실 86년 우승을 차지한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라고 되집어보면 정말 잘싸운 경기였다.

2차전 불가리아와 경기전부터 폭우가 쏟아진다. 뭔가 불길했다.

아니나 다를까 경기초반까지 주도권을 잡고있던 대한민국은 골키퍼의 펀칭실패로 상대편에게 공이 넘어갔고 결국 선취점을 내주고 만다. 하지만 후반 김종부선수의 트래핑후 발리골로 동점을 이루지만 승리하지 못한다. 하지만 월드컵진출 첫 승점을 따내며 월드컵 개막경기 불가리아와 비겼던 이탈리아전을 기대하게 되었다.

 

쉬운경기는 아니지만 해볼만한 경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쉽게 선취골을 내주고 석연찮은 판정으로 페널티킥을 내준다. 하지만 이탈리아 실축으로 전반전을 1: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마치고 후반전 드디어 동점골이 터진다.

해외파는 아니지만 81년 세계 청소년 선수권에서 활약하며 바르셀로나 영입제안을 받은 대표팀 최장신 공격수 최순호선수의 그림같은 드리블후 터닝슛으로 동점이 되었다.

 

 

                                                           (최순호선수 골과 박창선선수 골)

하지만 이탈리아의 연속골로 3:1로 밀렸지만, 후반막판 허정무선수의 만회골이 터지지만 더이상 반격을 하지못한다.

최종성적 1무 2패로 예선탈락 했지만 해외전지훈련 조차 하지못했지만 강팀들과의 경기에서 선전을 펼쳤다.

아쉬움도 많았지만 그 이후 대한민국 월드컵도전의 시작이 되었다.

이 댓글을 비밀 댓글로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