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레젼드] '바람의 아들' 이종범

Posted by 웃어요항상
2018.04.26 00:50 스포츠

포스팅전 사족을 달게습니다.

저는 해태 타이거즈에 1번타자였던 이종범이 싫었다. 아니 미웠다.

그가 나에게 무슨 위해를 가한것도 아닌데, 사기친것도 아닌데 미웠던건 너무 야구를 잘해서였다.

차라리 홈런을 맞거나 적시타를 맞아서 점수를 준다면 억울한 감정이 없었을텐데, 볼넷으로 나가 2,3루 도루후 땅볼이나 외야플라이로 실점하는 패턴은 1회부터 1점 접어두고 야구하는 기분이었다.

그렇다. 그는 '야구 천재' '바람의 아들'이라 불리던 이종범이다.

 

 

광주일고 시절부터 공,수,주 3박자를 갖춘 유격수였던 그를 연세대, 고려대등이 거액을 제시하였지만, 그는 당시 약체였던 건국대에 동기3명을 같이 입학하는 조건으로 장학생으로 진학한다.(당시에는 당연하게 일어났던 일이다.)

대학에 입학후 이종범과 동기 추성건(OB 베어스 1차지명)의 활약으로 건국대는 승승장구한다.

국가대표와 대학에서 주전유격수로 활약한 그는 92년 아마야구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며 '93 프로야구신인지명' 1차지명으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한다. (93신인지명은 레젼드 산실이다. LG 이상훈, 삼성 양준혁, 한화 구대성, 롯데 마해영, 태평양 김홍집등 한국프로야구를 이끄는 선수들이 많이 나왔다. 박충식, 성영재, 김현욱등의 선수들이 지명되기도 했다.)

첫해부터 김재박-유중일을 잇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격수로 자리잡았으며 특히 73개의 도루로 전준호와 경쟁하며 호타준족로 이름을 날린다. 비록 신인왕은 '괴물신인' 양준혁에게 밀리지만 한국시리즈에서 활약으로 신인 최초로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된다.(타율 0.280, 홈런 16개(4위), 타점 53점, 안타 133개(2위), 득점 85점(1위), 도루 73개(2위))

 

 

이듬해 94년  '신바람야구'로 신드룸을 일으킨 LG 트윈스에게 밀려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는 못하지만 2년차였던 그는 징크스는 커녕 타격전부문 상위권을 기록하며, 아직도 깨지지않는 84도루등 기록을 양산하며, MVP로 선정된다.

시즌막판 타율 4할을 기록하고 있었고, 복통으로 출전이 힘들었으나 목표였던 200안타를 위해 출전하였지만, 13타수 1안타를 기록하며, 두마리 토끼를 다 놓친다.

(타율 0.393(1위), 홈런 19개(4위), 타점 77개(5위), 안타 196개(1위), 득점 113개(1위), 도루 84개(1위))

95년의 병역의무로 방위병으로 복무하며 홈경기(63경기)에만 출전하며, 16개의 홈런등 활약을 이어나간다.

96년 병역을 마친 그는 홈런 25개(3위)를 기록하며 유격수최초 20-20을 기록하며 중심타자같은 1번타자로 리그 최고의 선수(차라리 완벽한 선수라고 말하는게 맞는것 같다.)가 된다.

선동렬선수가 일본으로 진출하고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그는 유일하게 일본에서도 통할 선수라는 찬사를 받는다. 

그리고 97년 이종범은 더욱더 완벽한 모습을 보이며 30-30을 달성하며, 다시한번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이될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두게된다.(이후 해태는 모기업의 재정때문에 2001년 7월 기아자동차에 구단을 매각한다.)

(타율 0.324, 홈런 30개, 타점 76개, 안타 157개, 득점 116개, 도루 64개)

한국에서 더 이상 이룰게 없었던 그는 구단재정문제와 본인의 희망으로 주니치 드래곤즈로 임대로 가게된다.

 

 

98년 '한국의 이치로'로 불렸던 그는 시즌 초부터 주전 유격수자리를 차지하고 도루 1위를 달리며, 일본프로야구에서도 점차 자리를 잡고있었다. 하지만 56경기만인 6월 23일 한신타이거즈 사이드암 가와지리의 투구에 팔꿈치 골절을 당한다.

그해 9월에 복귀하였지만, 몸쪽공에 트라우마가 생긴듯한 모습을 보였다.

99년부터 수비부담을 덜기위해 유격수에서 외야수로 옮겼으나, 타격부진은 계속되었다. 2001년 전반기까지 예전의 모습을 찾지못한 그는 원형탈모까지 생겨가면서까지 부진탈출에 고심했지만, 해태를 인수한 기아 타이거즈의 요청으로 다시 한국프로야구로 복귀한다.

2001년 하반기에 출전한 이종범은 규정이닝은 채우지 못하였지만 타율 0.340에 홈런 11개로 다음시즌을 기약한다.

하지만 2002년 이종범은 프로야구 대뷔이래 처음으로 3할대 진입에 실패(0.293)하지만 18개의 홈런과 35개의 도루로 건재를 과시한다. 절치부심한 이종범은 다음해 3할대 타율을 올리고(0.315) 20홈런 50도루로 최고령 20-20클럽에 가입하며 도루왕에도 오르면서 대도의 모습을 보여준다.(최고령 20-20클럽은 양준혁선수가 갱신한다.) 

2004년 17홈런을 기록하지만 다시한번 2할대로 추락(0.260)하였지만, 이듬해 다시한번 3할대를 기록하며(0.315) 시즌을 앞두고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일명: WBC) 대표팀 주장으로 박찬호, 이승엽과 함께 4강신화를 이룬다.(아직도 대진표를 보면 미국의 꼼수가 많았는데 정작 미국은 일본을 억지로 이기고, 한국과 멕시코에 패하며 2라운드 탈락한다.)

 

하지만 정작 시즌에서는 부진하고, 이듬해 2007년은 1할대로 떨어지면서 더이상 이종범은 선수로써 기대보다 은퇴후를 기약하는 듯 했다. 2008년 다시 2할후반대(0.284) 타율로 되살아나고 2009년 4년만에 100안타 이상을 기록하며 기아 타이거즈 창단 첫우승(해태를 포함한 통산 10차례우승)을 차지하며 마지막 불꽃을 되살렸다.

2010, 2011년 대타와 대수비로 출전하던 그는 2012년을 기약했지만 선동렬감독의 요청으로 시즌을 앞둔 3월 31일 전격 은퇴를 발표한다. 한일통산 2,000안타, 500도루, 1,000득점등 많은 업적을 남기며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 그리고 작년 신인왕을 수상한 '이정후(넥센)의 아버지'로 제2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일본진출이 가장 아쉬웠던 한국 '야구천재 이종범' 또다른 야구천재를 기다린다.   

 

 

김응룡감독의 어록 ' 투수는 선동렬이 최고, 타자는 이승엽이 최고, 야구는 이종범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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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타팀팬 입장에선 정말 얄미우면서 부러운 선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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