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레젼드] 타격의 달인 장효조

Posted by 웃어요항상
2018.04.24 22:47 스포츠

이분을 설명하기가 정말 어렵다.

강타자라고 하기에는 홈런 수가 적고, 교타자라고 하기에는 본인의 의지로 컨텍 위주의 타격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타이 캅?' '한국의 테드 윌리엄스?' '한국의 토니 그윈?' '한국의 이치로?' 어떤 것도 어색하다.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은 '타격의 달인'이다.

물론 위에 열거했던 선수들이 더 많은 성적을 내고, 역사가 짧고 수준이 낮다는 한국프로야구에서 다소 늦은나이에 대뷔해서 이만큼 족적을 남긴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삼성 라이온즈 레젼드 장효조 선수(작고)다.

 

 

그는 상원고(구. 대구상고)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으며, 단순히 타격만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73년 황금사자기 대회에서 배명고와의 결승전에서 연장 10회 안타를 치고 나간 뒤 이승후의 중전안타 때 홈으로 필사의 슬라이딩을 하며 결승점을 올렸다. 

장효조는 홈 플레이트에서 기절해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 대회에서 타격상, 최다안타상을 수상하였고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한양대와 국가대표에서 활약하였고 79년 실업팀 포항제철에 입단한다.

80년 육군에 입대하여 경리단(현.상무)에서도 활약하였고, 제대후 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였지만 프로야구에 입단하지 못한다. 

82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참가때문이었다.(프로선수는 참가할수 없다는 규정때문에 갈수가 없었다.)

82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83년 최동원, 김시진, 한대화등과함께 프로야구 부흥을 이끈다.

 

 

83년 27세의 나이로 입단한 장효조는 MVP급 활약을 펼치지만 신인왕은 신인답지 못한 성적으로 받지못하고, MVP는 홈런왕 이만수에게 밀리렸지만 타격왕등을 차지하며 달인다운 활약을 차지한다.(타율 0.369(1위), 홈런 18개(3위), 타점 62개(3위), 볼넷 58개(1위)을 차지하였지만 삼진은 단 39개 밖에 당하지 않는다.)

84년 삼성 라이언즈는 전기리그 우승,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하지만 장효조는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며, 더이상 홈런 욕심을 버리고 좀 더 컨택에 집중한다.(타율 0.324, 홈런 7개, 타점 44개, 볼넷 49개, 삼진 25개)

85년 장효조의 진가가 나타나며, 삼성라이온즈는 아예 전,후기리그 통합우승하며 한국시리즈를 없애버리며, MVP를 차지한다.(타격 0.373(1위) 홈런 11개, 타점 65개(2위), 볼넷 57개, 삼진 23개)

 

 

86년, 87년은 타격왕을 차지하며 타격왕 3연패를 차지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 2년연속 해태에게 패하며 시즌을 마친다.

88년 선수협 가입하며, 대학 실업팀 프로야구 입단 동기인 김시진의 트레이드를 지켜보며, 부진한 시즌(0.318 타격8위)을 보내며 두번째 충격적인 트레이드로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한다.(롯데 간판 김용철과 트레이드 된다.)

89년 이적후 3할을 기록하지만(0.303) 성적이 떨어지더니 급기야 90년 '방망이를 꺼꾸로 잡아도 3할을 친다'는 그가 3할대 아래로 떨어지며 '장효조의 시대도 끝났다'는 말을 듣는다.

91년 마지막 불꽃을 태운 그는 다시한번 타격2위(0.347)를 기록하며 롯데를 다시한번 가을야구를 이끌면서 '장효조가 살아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듬해 92년 프로야구 최초 1,000안타와 롯데 자이언츠를 두번째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홈런없이 타격 2할대(0.265)에 그치며 10년간의 프로야구 선수로써 마감을 한다.

통산성적: 타율 0.331, 안타 1,001개, 홈런 54개, 타점 437개, 볼넷 506개, 삼진 289개

타율도 엄청나지만 삼진대비 볼넷수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선구안의 소유자였다. 

 

 

프로야구 팬에게 2011년 9월은 크나큰 별이 두개나 떨어졌다.

일주일 차이로 장효조와 최동원 두분이 일주일 차이로 병세가 악화되어 돌아가셨다.

프로야구 최초의 1,000안타 장효조와 최초의 1,000탈삼진 최동원 항상 경쟁팀에서 승부를 펼쳤던 프로야구의 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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