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레젼드] '검은갈매기' 호세

Posted by 웃어요항상
2018.04.24 03:43 스포츠

1998년 프로야구에 변화의 바람이 일어난다.

선수들의 요구인 FA제도를 도입하는(99년 시행) 대신 외국인선수의 등장이다.

총 고교팀수가 56개밖에 되지않아 선수수급이 원활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박찬호선수 덕에 MLB를 팬들의 눈높이가 높아져서(?) 프로야구 관중수가 95년을 정점으로 점차 떨어지고 있었다.

 

98년 용병제도는 자유계약이 아닌 드래프트 방식으로 뽑았다.(전년도 성적역순으로 2명 지명)

연봉은 최고 20만달러까지 이고 재계약시 최고 7만5천달러까지 인상이 가능했다.(지켜지지않고 이면계약이 난무했다.)

최고의 용병 OB 베어스의 '흑곰' 타이론 우즈, 현대 유니콘스 우승을 이끌었던 스코트 쿨바(첫해만 뛰고 미국으로 돌아갔다.)등 팀의 성적을 좌우하며 용병선발에 각 팀마다 총력을 기울였다.

 

 

99년 용병드래프트 최대어는 댄 로마이어(한화), 펠릭스 호세(롯데) 두명이었지만, MLB 4년연속 풀타임선수이며 올스타출신인 호세보다 전년도 트리플A 홈런왕 출신이었던 댄 로마이어가 1순위로 거론되었다.

하지만 전년도 꼴찌로 1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었던 롯데는 댄 로마이어를 한화에 넘겨주는 조건으로 한화가 2차 지명하려고한 좌완투수 길포일을 롯데가 지명하는 조건으로 1차지명으로 호세를 지명한다.(이때 롯데가 2차지명 예정이었던 선수는 제이 데이비스였다. 결국 99년에 롯데는 시즌초 퇴출된 길포일이 아니라 데이비스, 박현승, 박정태, 호세, 마해영으로 이어지는 역대급 타선을 보유할뻔 했다.)

하지만 입단식후 전지훈련기간과 시범경기까지 들려온 소식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다.

강훈련을 신성시한 한국야구에 술과함께 연습훈련보다는 장작불앞에(드럼통에 불을피워) 앉아서 웃고있는 모습과 부진한 성적은 아직 몸상태가 올라오지 않았다는 본인말과는 달리 시작전부터 퇴출을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범경기의 부진에대한 걱정은 시즌개막과 함께 날아갔다.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본인의 말대로 연습은 연습일뿐 수많은 기록을 세우며 전구단 마운드를 맹폭했다.

롯데팬이 기대했던 그 이상이었다. 한경기 좌우타석 홈런, 2경기 연속 만루홈런, 프로야구 통산 10,000호 홈런등 발길을 돌렸던 사직구장을 다시 들끓게 했다. 화끈한 성격 또한 부산팬들과 잘 맞아떨어졌고, 그로부터 부산에서는 택시, 음식비는 무료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최초의 양대리그로 치러진 99년 시즌후반까지 1위였으나 두산의 막판 추격으로 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54홈런 이승엽선수와 마지막까지 타점왕 경쟁을 하며 롯데타선을 이끌었다.(123개 타점의 이승엽선수와 1개차이) 비록 타이틀 획득은 하지 못하였지만 타율0.326 홈런 36개 타점 122개를 기록했다.

 

 

롯데팬들에 최고의 가을야구를 선보인다.

당시 한국시리즈 우승이 없었던 삼성은 '라이언 킹' 이승엽을 필두로 해태에서 임창용, 쌍방울에서 김기태를 영입하며 매직리그 1위로 PO에서 맞붙었다.('푸른피의 사나이'라는 양준혁과 임창용을 트레이드 한다.)

1승3패로 패색이짙던 롯데는 5:3으로 뒤지던 9회 2아웃에 호세의 극적인 3점 끝내기홈런으로 살아나고, 6차전도 승리한 롯데는 마지막 7차전을 치른다.

'분위기는 점점 삼성쪽으로 흐르고~~~'라는 나래이터로 유명했던 2:0으로 지고있던 상황에서 호세는 솔로홈런으로 그라운드를 돌고오던 호세에게 관중들은 오물을 던지고 흥분한 호세는 방망이를 관중석으로 투척하며 퇴장당한다.

그 이후 선수단은 경기를 포기하고 철수하다 다시 복귀하고 역전에 역전을 거듭한 끝에 6:5로 승리하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 하지만 한화에게 한국시리즈에 지면서 준우승에 머문다.(아직 롯데팬들은 99년 한국시리즈는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2000년 장기계약을 요청하며, 당시 장기계약이 금지되었던 한국야구를 떠나 MLB 뉴욕 양키스와 계약하며 한국을 떠났던 호세는 2001년 다시한번 롯데로 복귀한다.

하지만 노쇠한 모습이 아닌 더 강력해져서 돌아왔다.

투수들이 아예 정면승부를 하지않고 유일한 출루율 5할을 기록하며 일명 '본즈놀이'를 했다.

타율 0.336 홈런 36개 타점 101개 사사구 127개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시즌막판 '배영수 참교육'으로 지칭된 사건이 터진다.

위협투구로 볼넷으로 1루로 나간 호세는 다음타자 훌리오 얀이 몸에 맞는볼이 나오자 1루에서 투수에게 달려들어 배영수를 가격한다. 이를 계기로 잔여경기 출전금지 징계를 받는다.

 

 

2002년은 이중계약 파문으로 영구제명을 받으며 김병현선수 소속이었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2년계약을 하며 미국으로 돌아갔던 그는 암흑기를 보내던 롯데팬의 강력한 요청으로 2006년 다시 롯데로 돌아온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는 그에게도 찾아왔다.(타율 0.277, 홈런 22개, 타점 78개로 재계약에 성공하였지만 롯데의 기대에는 못미쳤다. 물론 만 42세의 나이에 기록한 성적으로는 훌륭했지만 그에대한 기대는 그이상이었다.)

하지만 그의 불같은 성질은 여전했다. SK와 경기에서 신승현의 위협구에 맞고 1루로 걸어가는 호세를 자극한 신승현을 향해 다시한번 달려나갔고 신승현은 글러브를 집어던지고 덕아웃으로 피했고 호세를 제지하기 위해서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났다. 덕아웃에서 방망이를 들고나온 신승현을 본 호세는 흥분하여 다시 달려들었고 십여명이 달라들어 겨우 제지했다.

 

 

2007년 5월23일 퇴출이 결정된 날 호세는 그해 첫홈런이자 팬들에게 마지막 홈런을 선사하고 한국프로야구와 작별을 하였다. 불같은 성격이었지만 팬들을향한 환한 웃음은 롯데팬들을 호세바라기로 만들었고 단순히 야구 잘한 선수가 아니고 용병이 아닌 우리선수라는 생각을 갖게했다.

2013년 시구자로 사직구장을 찾은 호세는 코치로 롯데에 복귀를 원했지만, 현재까지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타석에서면 항상 뭔가를 해줄것같은 생각을 갖게했던 '검은 갈매기' 펠릭스 호세 그에게는 뭔가 특별한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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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세 실력만큼은 최고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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