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레전드] 3천만원에 바뀐 인생 '박찬호'

Posted by 웃어요항상
2018.04.20 02:37 스포츠

1973년생은 저주 받은 세대다.

대학에 떨어져 재수를 할려니 교과서가 바뀌고, 삼수를 할려니 시험제도가 바뀌고(학력고사 --> 수학능력평가) 군대를 갈려니 방위가 없어지고, 취업을 할려니 IMF가 터졌다.

하지만 야구에 관해서는 최고의 황금세대라고 한다.

휘문고 임선동, 신일고 조성민, 경기고 손경수, 공주고 박찬호, 광주제일고 박재홍, 경남상고 차명주, 부산고 염종석등등

 

 

91년에 있던 '92신인 드래프트'전쟁이 시작되었다.

LG트윈스가 지명한 임선동은 계약금 3억원을 제시하자, 추가로 LG대리점을 내달라는 말에 포기하고 임선동은 연세대로 입학한다. 당시 OB베어스(현.두산베어스)는 조성민을 지명하지만 임선동과 비슷한 조건을 제시하자 OB에서도 포기. 그는 고려대로 입학한다. 그러자 OB 베어스는 손경수를 지명하고 OB에서 2억원을 제시하지만 부모님 뜻으로 홍익대에 진학한다.(후에 2학년 중퇴후 OB에 입단하지만 이중등록 파문, 간염에 의한 부상등으로 95년 11월 임의탈퇴된다.)

 

그리고 공주고등학교 출신 박찬호는 빙그레 이글스(현.한화이글스)에서 지명한다.

원래 대학 진학을 생각했던 박찬호는 당시 빙그레 이글스 감독인 김영덕 감독을 만나고 그로부터 "최동원 선동렬같은 투수로 만들어 주겠다"는 얘기를 듣고 프로야구 입단으로 마음을 정한다.

하지만 그에게 제시된 계약금은 2천만원.

최동원 선동렬 선수같은 최고의 계약금도 아니고 동기들 1/10 정도 밖에 되지않는 계약금 이었다.

훗날 박찬호는 '계약금 5천만원 이었으면 계약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3천만원이 박찬호의 인생을 바꾼것이다.

하지만 너무 적은 계약금으로 박찬호는 한양대학교로 진학하게 되고 그의 인생이 바뀐다.

 

 

대학에 진학하고서도 임선동, 조성민이 가장 부각되었고 국가대표 에이스도 그들에 돌아가고 박찬호는 공만 빠른투수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다 92년 한미일 대학선수권이 박찬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다.

최고 150Km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던지고 제구가 괜찮은 완성형 투수였던 임선동, 조성민과 달리 비록 제구는 불안하지만 150Km중반을 던지는 박찬호를 메이져리그에서는 더욱 주목했다.

하이키킹(투구시 왼발이 머리까지 올라오는)과함께 평균구속이 150Km넘는 공을 너무도 쉽게 던지고, 미국전에서 삼진 퍼레이드를 펼치던 박찬호는 메이져리그 스카우터들의 표적이 된다.

미국에서 벌어진 93년 버팔로 유니버시아드에서도 강속구를 뽐내며 비록 쿠바에게 졌지만 은메달을 획득한다.

당시에도 다국적 팀으로 유명했던 LA다져스 구단주 피터 오말리는 안병환 감독을 불러서 임선동, 조성민, 박찬호선수 싸인볼을 건내며 어떤선수를 뽑아야할지 부탁한다. (그는 박찬호 선수의 싸인볼을 집어든다.)

그렇게 박찬호는 120만달러에 메이져리그 계약을한다.

박철순선수가 미국에 진출하였지만 마이너리그만 경험하고 복귀하였고 메이져리그에 올랐던 선수는 박찬호가 유일했다.

 

 

94년 한양대를 중퇴하고 메이져리그 데뷔를 하였다.

물론 패전처리로 1이닝 2실점후에 내려왔지만, 당시만해도 동양인이 메이져리그에 진출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않았다. (물론 중계도 없었고 스포츠뉴스 단신으로 나왔다.)

95년 역시 짧게 메이져리그에 올랐지만 그해 박찬호보다 일본프로야구(NPB) 출신 노모 히데오가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었고 국내팬들 역시 한국과 일본의 야구격차만 느꼈던 해이다.

96년 스프링캠프때부터 시범경기까지 활약한 박찬호는 5선발 경쟁상대였던 왼손 너클볼투수 톰 캔디오티한테 밀리며 선발수업을 하겠다고 마이너리그를 자청하였지만 토미 라소다 감독(사진 왼쪽 2번째)이 구원투수로 나서달라며 풀타임 메이져리그로 활약이 시작된다.

시즌 첫게임인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에이스 라몬 마르티네스(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스 형)의 불의의 부상으로 2회에 구원등판하며 메이져리그 첫승을 거둔다. 꿈에 그리던 메이져리그 첫승이다.

구원과 선발을 오가며 5승5패 119탈삼진 3.64의 방어율로 풀타임 첫해 활약을 한다.

이듬해엔 풀타임 선발로 14승 8패 166탈삼진 3.38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5선발로 시작하여 에이스급 활약을 한다.

98년 15승 9패 220이닝을 던지며 2선발로서 활약하며 그해 겨울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하며 병역혜택까지 받는다.

2001년까지 박찬호는 라몬 마르티네스, 노모 히데오, 캐빈 브라운등 에이스가 있었으나 대부분 부상등으로 실질적 LA 다져스 에이스로 활약하였고, FA로 텍사스 레인져스와 계약한다.(5년 6400만 달러)

 

 

하지만 텍사스 입단후 부상으로 최악의 먹튀라 불리며 조롱거리가 되었다.

2005년 시즌도중 샌디에고 파드레스로 트레이드되며 그해 12승을 거두지만 방어율 5점대로 부진하였다.

그후 뉴욕 메츠, LA 다져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뉴욕 양키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 이적하였고, 동양인 최다승인 124승98패 20홀드 2세이브 1872탈삼진 4.36의 평균자책점을 거두고 2010년 메이져리그 은퇴한다.

2011년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에 입단해서 7승7패를 거둔다.

그리고 2012년 한국으로 돌아온 박찬호는 한화 이글스를 마지막으로 투수 글러브를 내려 놓는다.


 

투수로써 최고는 아니었지만 IMF때 국민들의 시름을 덜어주었고 박세리와 함께 박찬호는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거구의 메이져리그 타자들을 불같은 강속구로 삼진을 잡아내며 포효하며 덕아웃으로 걸어들어가던 당당한 모습에 '우리도 할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던 '박찬호'

가정을 할수는 없지만 만약 그가 제시받았던 계약금이 5천만원이었고 빙그레 이글스와 계약하였다면, 우리가 김병현 추신수등 메이져리그 진출을 볼수 있었을까?

다시금 다져스를 제2의 국가대표팀으로 생각하며 응원하던 그 시절의 박찬호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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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말 대단했전 박찬호 선수죠.
    LA 다저스에서 삼진 잡고 걸어들어가는 모습에 스트레스가 확 풀리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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